원칙주의자가 무원칙인 이유[2018년 11월 18일 목양칼럼]
원칙주의자가 무원칙인 이유
기본적으로 저의 기질은 했던 것을 다시 하는 것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쪽입니다. 익숙하면 지루하고 잘하게 되면 지루해합니다.^^; 새로운 것에 끌리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 없는 삶의 반복과 습관들 속에서 자신을 다루어내야 하는 목회의 자리는 기질상? 잘 맞지 않습니다. 제가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목회자의 삶을 보고 배우면서 예상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수한 반복이었습니다. 새벽기도, 독서, 훈련사역, 큐티, 예배, 운동, 미팅…등등
이것들을 어떻게 반복해야 할 것인지 원칙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서 그 반복과 흐름안에 나를 넣어놓지 않으면 결국은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 저기를 누비고 싶은 마음에 나를 교회에 심어놓았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목회자로서 나의 삶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복만 훈련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복을 깨뜨리는 상황이 수시로 있고, 그런 노력과 관계없이 목회자로서의 나의 삶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삶의 기준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토요일에는 주일을 위해서 집례하는 예식 외에는 참석하지 않는다든지, 펜스의 룰로 잘 알려진 것처럼 아내 이외의 이성과는 식사를 함께 하지 않는다든지–하다보니 함께 할 때도 생기기는 하지만 그 때에는 아내와 교역자들 혹은 다른 분들에게 꼭 알리고 만납니다., 아들들과 분기마다 한 번씩은 아빠와 하루를 함께 보낸다든지, 주일을 꼭 다음교회에서 보내지만 피치 못하게 떠나 있어야 한다면 동역하는 목회자들께 주일 설교를 맡긴다든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그 선을 꼭 지키려고 하고 그 선 안에 머물려고 하는 것은 나에게 주신 부르심과 자리를 가장 잘 감당하고픈 충심에서입니다. 감사하게도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저의 연약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하는 저의 한계치를 넘어서 26년간 사역을 감당해오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매일마다 몇 시간씩 연습을 하고, 농구선수가 매일 체력과 경기훈련을 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이고 더 성장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것처럼 목회도 그 반복이 사라지고, 그 기준이 없어지면 삽시간에 위기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들께서 저에게 원칙주의자같다고 말씀을 해주실 때, 저는 굉장히 기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지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성령안에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관계와 사역이 그렇게 진행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반대로 원칙이 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 말씀도 맞습니다.
가끔씩은 그 선들을 지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반복을 깰 때도 있고, 기준들을 밟고 지나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_____________^; 그러나 물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원리와 원칙을 무너뜨리는 기준은 ‘덕’입니다. 나보다 가정을 위해서 나의 원칙을 잠시 내려놓고, 나보다 공동체의 덕을 위해서 나의 반복을 잠시 멈추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보다 더 큰 주님의 교회의 덕을 위해서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간혹 물리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다양함 속에서 우리는 반복을 통해 습관을 만듭니다. 목회자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영적습관, 언어습관, 생각의 습관과 관계의 습관은 앞으로도 제가, 아니 우리가 훈련하고 다듬어가야 할 성숙의 지표들입니다. 예수님의 습관이 몸에 베일 때까지 그 목표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르심이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속에서 주어진 것이기에 작은 원칙을 넘는 더 큰 원칙이 작동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유연함이 있는 원칙주의, 원칙안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삶. 나에게는 철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한 없이 부드러울 수 있는 이 역설의 원칙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더욱 자라게 하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합니다. 여러분, 한 주간도 사랑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