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1일 목양칼럼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을 추모하며…
최근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께서, 그것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가장 앞에서 섬기시던 분들의 부고를 접하는 것이 예전에는 담담하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턱턱 막히는 것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중동의 속담에 한 노인의 인생은 하나의 도서관과 같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한 분의 가치는 한 개인의 경험을 너머서 한 시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철이 들면서 배웁니다.
2009년에 미국에서 머물고 있을 때, 호주로의 귀국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던 시점에서 들었던 랄프 윈터 박사님의 소천의 소식 또한 너무 큰 아쉬움과 슬픔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서구선교의 한계와 문제점을 학자의 양심으로 정확하게 짚어내셨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선교를 재정의하시며 서구의 선교를 한 단계 성숙한 곳으로 인도하셨던 실천적 지도자셨던 그분의 부재는 일차수혜자가 아님에도 그 장례가 열리고 있던 Lake Avenue교회를 지나치지 못하고 그곳에 주차를 하고 발걸음을 예배당안으로 옮길 수 밖에 없는 간절한 아쉬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분의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을 영혼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규정하다보니 교회들의 세계관적인 사역에 대한 관심이 약해졌다고 하는 것, 존 스토트가 그의 마지막 책인 ‘레디컬 제자도’에서 말한 ‘깊이없는 성장’이 그의 사역적인 –당연히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초청과 구원의 확신으로 이어지며 칭의중심적인 사역으로 성숙을 지향하지 못한 미국교회가 만난 교회성장주의는 성도들을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일조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이 사역하던 시대의 미국은 다시금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무디 이후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다니시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헌신하셨던 그 사역들은 1,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나던 무신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 아래에서 꺼져가던 복음주의 교회들의 낙심과 불안에 불씨를 재점화해주었습니다. 교회를 깨어나게 한 힘이었고, 교회가 연합하도록 한 윤활유였고, 다시금 교회의 부흥을 기도하도록 사명을 재정의하게 한 운동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공한 사역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사역자와 사랑받는 사역자를 처음으로 이 빌리 그레이엄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저의 인생의 목표중의 하나인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에게 존경받으며, 자녀들에게 인생의 친구로 함께 자라간다!는, 사역자에게 가정이 가장 중요한 사역지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해준 분이 바로 빌리 그레이엄이었습니다. 사역자로서 외적인 모습에 취하지 않고, 나의 자리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랑하고 지키고 인격적으로 살아내려고 했던 한 사람의 믿음의 선배로서 그의 빛나는 사역은 더 의미가 있고, 뒤로 갈수록 후광이 비추어 집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왜 하나님께서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의 그 작은 소년을 불러서 이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는지 묻고 싶다”고.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 분을 부르셔서 사용하셨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앞으로의 이 시대에도 계속해서 일어나서 복음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고 죄의 권세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날을 보고 싶습니다. 그 일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이름은 제 평생의 선물입니다. 당신의 삶과 사역은 우리의 축복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품에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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