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3일 목양칼럼입니다
주중에 받았던 질문중에서…^^
오늘 칼럼은 주중에 받았던 질문중 하나입니다. 질문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Unfair하고억울한 것같은데, 왜 그런 일이 있느냐’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픈 것입니다. 하지만, 불공평과 억울함은 몸의 장애에서만 경험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몸의 장애만 있지 않습니다. 생각의 장애, 언어의 장애, 관계의 장애, 태도의 장애, 마음의 장애, 사랑의 장애, 용서의 장애등등을 안고 살아가는 수 많은 인생의 장애들이 있습니다. 즉, 어떤 종류의 장애인가하는 것이지, 우리 모두에게는 장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비어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강점이 있지만, 단점이 있습니다.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가끔씩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 부족함들이 불공평과 억울함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부족은 장애나 결함이 아니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은혜라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강점으로 서로의 빈부분을 채우고 그 조각들이 맞춰져서 멋진 모자이크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문제가 있고 모두가 결핍이 있지만 그 안에 채워짐과 만족을 누리는 곳이 바로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면 결핍은 남지만, 채워짐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모든 것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또 다른 결핍과 불평등, 억울함을 느낍니다. 비교에서 오는 불만족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불평등과 억울함을 만들어갑니다. 누군가 기회를 더 갖고, 누군가 관심을 독차지하고, 누군가 더 많은 소유를 갖고, 누군가는 더 많은 힘을 가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의 부족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즉, 장애란 겉으로 드러나는 불편함과 파생되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 근원에는 죄가 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해서도 불평하게 하고, 아무리 넘쳐도 결핍을 만들어내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수 많은 장애우들을 치유하셨습니다. 몸의 장애만이 아닙니다. 생각의 장애, 관계의 장애, 인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먹이고 입히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구약에서 가르치는 공의와 정의의 한 부분이고, 고아와 과부 같은 약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요청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과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장애만 어렵고 아픈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장애가 있으면서도 장애가 있는 것도 모르고, 장애를 무시하며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억울은 장애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죄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가장 억울한 일은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다스림과 통치아래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영원한 결핍의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더 큰 고통이고 아픔인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쁨과 회복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눈을 교정하고,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곳에서 함께 아파하고, 그들에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분깃들을 풍성히 나누고, 그들이 주와 함께 서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보게 됩니다. 결핍을 통해서 당할 수 있는 억울함과 눌린 마음의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라는 것을… 한 주도 그분의 넉넉하심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속에 넘치도록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