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7일 목양칼럼입니다
아무도 몰라도!
시계처럼 정확하게 3주의 시간이 지나고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서 샵에 가서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보니, 오늘 미용사 분께서 입으신 옷이 정장스타일이셔서 순간 ‘저 옷에 머리카락이 박히면 하루밖에 못 입으실텐데, 매일 입고 드라이 클리닝을 하시나?’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함께 사는 남편의 불평, 발바닥까지 날아가 박히는 머리카락의 날카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셨습니다. 정말 그 정도까지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것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까지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마 아무도 모르실거예요.”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만이 가진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짐을 옮기면서 허리에 가진 통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12학년 자녀를 둔 간절한 부모의 애닮음도 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는 사람의 고충이 있고, 살아온 대가로 몸의 마디마디가 신음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멋지지만, 성과와 이익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안고 도끼날을 머리위에 올려 놓은 것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긴장이 있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꺼내놓아야 하는 창작의 고통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우라 아야꼬 여사가 우리는 저 마다 나아갈 수 있는 지성소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전제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안고 살아가는 고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로는 나의 고통이 가장 큰 것같고, 나의 아픔이 가장 심한 것같고, 나만 이해받지 못하고, 나만 이렇게 어려움 속에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들이 있고, 삶의 짐들이 있습니다.
가끔씩은 그 짐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 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마다 부르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저마다 자신만의 신음소리를 또한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만약에 누군가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 내가 그 사람을 본 순간이 그 사람의 모든 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감독이 원하는 컷만을 편집해서 내보내는 것처럼, 우리가 보는 모습들이 편집된 컷들처럼 한 쪽면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곳은 우리가 살아있는 곳은 아닐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고통이 나만 있는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나 성장해가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하고 내 지경을 넓혀가고 내 삶의 깊이를 더 해가려고 할 때 어려움은 몇 배가 됩니다. 역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할 것 같은 위험이 따릅니다. 가면 갈수록 내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으로 어려움의 파동이 점점 확장되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순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나만의 고통은 어쩌면 내가 이 땅에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내가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모습이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삶의 일부를 나누기 위해서,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대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살고 있고, 그것으로 기여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 고통은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가장 값지기 때문에, 중요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고통안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라고 들려주었던 바울의 격려가 한 주간도 일상의 치열함 속에 살아가실 다음가족들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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