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3일 목양칼럼입니다.
다음스러움(?)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 ‘~스럽다’는 것이 있습니다. ‘~’ 사랑스럽다, 고풍스럽다는 표현이 그 의미를 이미 생각나게 해줄 것이라고 믿구요. 호주에 살다보니 호주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가볍게는 엘리베이터안에서나 산책을 할 때 모르는 분들인데도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거나, 길면 몇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이곳 저곳 빙빙 돌리면서 처리하지 못하고 며칠이나 몇 주가 걸릴 때… 호주에 살고 있는 호주스러움이 느껴지곤 합니다.ㅎㅎ 이 호주스러움은 호주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의 오랜 연륜과 반복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 자체를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호주에 살아가는 자연스러움일 것같습니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다음스럽다는 말도 간간이 우리들 안에서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글쎄요. 다음스러움이 무엇이 있을까요? 격의없는 대화들과 나눔, 직분보다는 사역중심의, 일보다는 관계중심의, 다른 어떤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려는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모습들 속에서 그런 모습들이 포착되어서 우리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우리 공동체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이겠지요!
저에게 다음스러움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건강한 공동체의 문화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온 문화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직분중심, 공로중심, 서열중심의 문화를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중심의 문화로 만들어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다음교회의 문화는 성경적인 공동체를 추구해가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기에 공사중이지만 계속해서 기대를 안게 됩니다. 그러나, 가끔은 ‘다음스러움’이 조심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방식, 말을 나에게 편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교정하려고 할 때입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그것만을 허용하는 전통과 형식주의로 가는 출발점은 바로 거기입니다. 우리가 성경안에서 추구하려고 하는 공동체의 근본적인 의도와 중심을 몇 가지의 세칙들이나 방식으로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원래의 모습은 다음스러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스러움입니다. 우리의 다음스러움은 하나님 나라를 담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우리를 성령안에 담그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고 그분의 나라를 구하는 삶의 자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하고 세우려고 하는 교회는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다음교회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죠! ‘다음스러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스러움’이 더 소중하고 값진 목적이고 지향점이 될 때, 진정한 ‘다음스러움’이 유지될 것입니다.
영국의 전 카메론총리가 은퇴하면서 “나도 과거에는 영국의 미래였다”는 말을 국회에서 했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공동체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안에 이루어가시는 미래를 우리의 틀로 가두면 교회는 화석화됩니다. 계속해서 성령안에 있는 공동체의 문화를 만들어갈 때, 시기에 관계없이 모두가 주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나 저기도, 이 방식이나 저 형식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입니다. 한 주도 주님안에. 그분의 나라를 살아가는 다음의 가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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