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5일 목양칼럼입니다.
죽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십자가에 내 죄가 못박혔음을 날마다, 매 순간 선포함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승리주의적인 믿음의 흐름들은 한 때 우리에게 미답지론과 고지론등의 멋진 목표물을 선사해주었습니다. 때로는 승리의 부름으로, 때로는 비어있음의 고통으로 우리를 그 자리에서 이끌어내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자극했습니다. 그 자리에 가고, 그 역할을 하고, 그 목표를 얻는 것이 우리의 이유가 되었고, 우리에게 쾌감을 주는 믿음의 마침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너무 중요한 한가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승리가 마치 주님의 우리를 향한 소원인 것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신실함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신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의 인격에 대한 우리의 한결 같은 신뢰와 그분의 진리 안에 머무르는 지속적인 삶의 의탁입니다.
주님의 목표는 우리의 존재가 먼저였는데, 우리는 목표를 앞에 두고 존재를 돌보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때가 있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행함에 대한 반대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함을 더 온전히 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 이야기는 더 옳은 것을 행하기 위한 거절이 아닙니다. 그 옳음이 주님안에 있기 위한 과정이죠.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정사와 권세와 세상의 어둠 주관자들과의 싸움이라고 바울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바울은 완전군장한 로마전투병을 예로 들어서 우리가 어떻게 살지 설명해줍니다. 진리, 의, 평안, 믿음, 구원, 성령의 검, 기도와 간구… 하나님의 전신갑주. 이것들을 따로따로 놓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한 분을 생각할 때에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력이 됩니다. 예수님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모두 예수님안에서 우리가 얻고, 경험하고, 만나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선언하는 것과도 같은 믿음의 삶의 중심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삶은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이것이 결코 한 순간의, 단 한 번의 어떤 체험이나 은혜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것입니다. 즉, 믿음의 삶은 매순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관계, 나의 사고, 나의 감정, 나의 가치, 나의 미래, 나의 가정과 일상……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안에서 잘 사는 삶. 그것은 더 잘 살려는 나의 수고로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나에게 주신 부르심을 따라서 헌신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더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나의 노력만으로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만난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진리,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충만, 그분의 안전함과 그분의 열정… 그분으로 사는 것입니다. 잘 사는 믿음의 삶은 사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나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에 예수님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것은 결국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한 주간도 살려달라 하지 않고, 나를 죽여달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 순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임재가 내 인생을 이끌어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믿음의 삶은 예수님으로 사는 삶입니다!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든 비교할 수 없는 인생 최고의 축복.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일어나는 그분의 승리를 기뻐하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