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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9일 목양칼럼입니다.

2022년 6월 11일
2분 분량

약할 때 강함되시네

이번 주에 순장 순모님들과 함께 일박으로 리트릿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리트릿처럼 다음공동체를 섬기면서 리트릿이 무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 이분은 순장 순모쯤은 당연히 하셔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한 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다 어려움을 안고 섬기기로 작정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건강의 문제든, 임신과 출산, 사업, 가정… 어느 한 분도 할 만해서 이 섬김을 감당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약함속에서의 섬김. 표현으로는 귀하고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무장을 해체시키고 마음을 짓릅니다. ‘이 분은 조금 쉬셔야 하는게 아닐까?’, ‘이 분까지 섬기셔야 하는 것일까?’, ‘차라리 사역을 일년 동안 안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저의 중심을 뒤흔듭니다. 그러나, 그 약함 속에서 섬김을 결정하시고, 섬김의 자리에 나오시는 분을 보면서 진한 전율도 느낍니다.

약함속에서의 섬김은 진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있고, 조건이 좋다면 더 많이 섬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모든 것이 있다고 섬기지는 않습니다. 모든 조건이 다 된다고 해서 그 자리를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그 일을 감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한 섬김은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더 잘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섬김의 자리는 주님이 그곳을 보시기 때문에 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에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삶의 이유이기 때문에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유인 것입니다. 그 때 그분께서 내 힘이 되시고, 내 공급이 되시고, 내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거죠!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경속에서 주님께서 쓰신 사람들은 다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두려움이 많았던 모세도, 버림받으며 고통했던 에스겔과 예레미야도, 말주변이 없었던 바울도, 별다른 자랑거리가 없었던 예수님도 모두 약자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약함은 주님의 부르심의 자리를 감당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더 온전히 붙드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반대로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붙들 때 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약한 자들을 부르십니다. 주님은 약한 자들 일수록 진정한 헌신을 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그 자리를 감당하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약한 자들을 강함이 되시고, 그 무능한 자들의 능력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안에 있다면, 그 누구도 약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주님안에 있는 자는 강자입니다. 주님은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약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서는 부요하나 주님에 대해서는 빈곤합니다. 세상에서는 능력이 있으나 주님앞에서는 무능합니다. 아무런 영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 때문에 우리의 약함이 감사가 되고, 감격이 되고, 열매가 되고, 통로가 되는 삶. 믿음안에 있는 삶은 그 자체로 인생의 기적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강함으로 살게하신 주님께,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귀한 다음공동체의 동역자들과 믿음의 가족들에게 전심을 다해서 감사하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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