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5일 목양칼럼입니다
연보라의 향연(饗宴)
11월이 찾아왔습니다. 입시철이 돌아와서 수험생들과 그들의 부모님들께는 긴장과 부담의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계절을 알리는 꽃인 자카란다(Jacaranda)가 곳곳에 활짝 피었습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이 연보라의 숙녀는 곳곳을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와 선명한 빛깔을 내뿜으며 채색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마치 그곳에 자신만 있는 것처럼 활활 타오릅니다. 그 불꽃처럼 흘러 넘치는 보라 빛을 넋을 놓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시키고, 황홀함을 요구하고, 찬사를 읊게 만듭니다.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때가 되면 피어나는 이 꽃은 참 성실하기도 합니다. 한 번의 게으름이나 한 번의 투정도 없이 그 자리에서 봉우리들을 터뜨립니다. 숨겨둔 것들이 없이 모든 가지에 꽃들이 기지개를 활짝 펴는 것처럼 모든 힘을 다해서 쭉쭉 퍼져가며 흐드러지게 피어납니다. 주변을 가득 채우는 그 풍요로움으로 마치 자신이 이 세상을 다 채우려는 욕심을 드러내듯, 그렇게 꽃나무 주변에 후광의 원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 나무가 터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고운 꽃잎들로 듬뿍 채우지만, 파스텔로 칠해놓은 것처럼 여백의 미도 잊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늠름합니다. 모양이 너무 초라해서 볼품없거나 너무 거대해서 과격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위로도 옆으로도 자신의 위엄과 미를 잃지 않을 만큼 근사하고, 동시에 자신의 그것들을 충분히 드러낼 만큼 품격이 있습니다. 아래에는 든든한 나무 몸통이 받쳐주고 있고, 위에는 우아함과 고운 선을 가진 꽃들이 하나로 어울려 자연스럽고 안정감 있는 실루엣이 연출됩니다. 마치 장미의 나라를 지배하는 백작의 부인처럼, 멋을 한껏 차린 드레스에 챙이 큰 세련되고 품격있는 모자를 쓴 것 같이……
저녁 석양에 햇살을 쉴새없이 받는 구름이, 잔뜩 머금은 물기에 그 빛을 반사하며 만들어내는 광채의 몽환적인 부위기 앞에서도 이 피조물은 전혀 기가 죽거나 초라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기회를 살려서 자신의 아름다움의 정점을 찍으며 가던 길을 멈추게 합니다. 그랜드 케니언의 장엄함 속에서, 타즈마할의 동화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비현실성속에서 나오던 탄성이 눈앞에 있는 이 나무 한그루 앞에서 쏟아져나옵니다. 어느새 입이 벌어진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마음을 다 들킨 다음입니다. 눈의 잔치를 지나서 마음의 심연을 녹이고 파동을 일으키는 이 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많은 작품들 중에서 단연 명작입니다.
빛깔은 과하지도 하고, 너무 옅지도 않습니다. 보기에 불편하게 강하지도 않고, 아쉬울 정도로 물감의 부족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 색깔이었어야 할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해가는 농도를 알고, 자신의 자존심을 변덕으로 짓밟지 않고, 곳곳에 그 연보라의 향연을 펼칩니다. 아마 이 색을 만들어내시기 위해서 창조주께서는 몇 날 며칠의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조금씩 물감의 양을 조절해가며 이 꽃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 꽃이 가장 윤이 날 수 있는 그 황금비율의 지점을 찾아내신 것 같습니다.
거기에 다른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을 배려해서인지 이 꽃은 잠시 피었다가 지는 센스도 잊지 않습니다. 시간이 길다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꽃은 우리에게 가르쳐주며, 자신의 세계안으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꽃잎이 하나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 또 하나의 자신을 수놓는 이 손님의 사라짐은 불쌍하거나 초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호수 위에 피어있는 전설의 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 다른 자신을 땅 위에서 반사시키며 몇 배의 신비함과 감탄으로 마지막 남은 힘을 소진합니다. 그분으로 즐기는 인생의 향연을 한 주간도 기대하며 김목사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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