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2일 목양칼럼입니다
20171022 창문과 거울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있는 최인철씨가 쓴 책 중에 ‘프레임’(Fra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세상을 보고 사건을 보고 사람을 보는 자신만의 창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방이 꽉꽉 막힌 곳에서 높은 곳에 나 있는 작은 창문을 하나 가지고 하늘만 보는 사람도 있고, 여러 곳이 열린 통유리로 만들어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두 극단이겠지만,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그 창이 나있는 방향이 있고, 그 모양이 있습니다.
항상 그 방향으로 보고, 항상 그 모양으로만 봅니다. 거기에서 더 다양한 창을 만들고 제대로 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구조와 틀을 바꾸는 공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를 홀로 있게 하시거나, 내가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경험을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 나의 틀을 깨고 다양한 눈을 갖고 나의 시야가 넓어지길 기대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 작업에 응하지 않거나 실패할 때 우리는 성숙해가기보다는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나있는 그 틀로 보면서 생각을 하고, 자신의 한계에 스스로 갇혀서 자신의 틀이라는 늪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모든 것을 그 논리로 생각을 하고, 모든 사람에게 그것으로 이유를 찾습니다. 모든 사건의 배후로 그것을 지목하고, 모든 세상을 그 프레임으로만 보기 때문에 항상 그것만 보입니다.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했던 한 구두회사의 카피처럼 한 번 정해지고 고정된 눈은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풀어가려고 시도합니다.
그 프레임이 사물과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보도록 열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주중에 막내가 ‘소크라테스가 누구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을 받는 이유는 그의 정적들이었던 소피스트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은 변증적인 논리를 사용해서 자신들이 완벽하고 자신들은 이 세상의 진실에 접근한 사람들이라는 거짓 자신감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소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이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분적인 것만을 알고 있지만, 전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언어유희를 통해서 과시하고 체하고 있던 그들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문의 프레임을 더 넓고 시원하게 열기 위해서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거울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 작은 틀로 세상의 모든 일과 모든 사람과 사건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신을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그 곳을 보려는 시도를 하거나 그곳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프레임에 연결해서 더 온전한 것들을 보기 시작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일 수 있습니다. 나의 눈이, 나의 생각이, 나의 버릇이 항상 그 자리를 지향해서 내 삶이 통째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더 이상 성숙해가지 못합니다. 항상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하고, 정작 나의 모습은 잘 보려고 하지 않는 나의 습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 한 권 읽고 덤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나이가 들어가고 연수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눈도,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마음도 온전한 예수님의 모습에 이르면서 계속해서 그분께로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나의 어리석음이 무척이나 크게 느껴지는 날에… 당신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사모하며… 김목사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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