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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8일 목양칼럼입니다.

2022년 6월 11일
2분 분량

오늘만 슬퍼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주에 사랑하는 고류현석목사님의 장례에 함께 했습니다. 불과 몇 달전에 알아서 개인적으로, 부부가 함께 만나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제 앞에 누워있는 목사님을 대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은 슬픔과 눈물, 아쉬움과 아픔의 감정이 터질 것 같은 용광로처럼 끓고 있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그곳에 참여한 분들의 회고의 말들과 감사의 글들은 그 죽음의 고통앞에서 구원과 생명의 소망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사건이 우리에게 준 새생명의 선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마음의 고통속에 영원한 생명의 빛이 비춰지고 있지만 그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기쁨이 슬픔을 이길 것입니다. 생명이 죽음을 이길 것입니다. 웃음이 눈물을 이길 것입니다. 감격이 절망을 이길 것입니다. 그러나, 슬픔은 당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내면에 남아서 분노를 만들고, 눈물을 만들고, 그리움과 아픔과 상실의 고통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 강도가 조금씩 약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하루 이틀에 없어질 것도, 없어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픈 것은 아픈 만큼 아파야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상처 속에 새살이 돋는 것은 상처가 낫는 것과 동시에 진행이 되는 것처럼 새살이 돋게 하기 위해서 상처를 제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처속에서 새 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눈물이 모아진 만큼 기쁨이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분노의 깊이만큼 환희의 강도도 올라갑니다. 그것은 몇 년의 기간이 필요한 일이고, 때로는 평생의 기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장례예배를 함께 하면서 참 마음이 아팠던 표현들이 있는데 ‘오늘만 슬퍼하겠다’는, ‘내일부터는 울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울어도 됩니다. 아파도 됩니다. 분노가 일어날 수도, 울분이 솟아오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됩니다. 슬프면 슬퍼해도 됩니다. 그것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은 믿음이 없거나 우리가 주님이 주신 구원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만드신 분께서 우리의 감정까지 만드셨고, 그 감정이 표현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의 시스템에 주신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천국에 있는 확신이 있어도 슬픈 것입니다. 가장 큰 기쁨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헤어짐의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그 두 가지의 감정들은 우리에게 동시에 교차하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가 이중적이거나 문제나 잘못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 다 우리의 삶의 진실이고, 우리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영원한 것이 일시적인 것을 대신할 것입니다. 소망이 절망을 밀어낼 것입니다. 희열이 눈물의 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오늘만 울지 않아도 됩니다. 울고 싶은 만큼 울어도 됩니다. 아픈 만큼 소리질러도 됩니다. 그리운 만큼 부르짖어도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완전한 사랑과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그분의 손길 안에 있다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닌 억지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그 지으신 모습 그대로 살아도 되는 자유케 됨과 놓임받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숙과 자유의 은혜를 한 주도 누리시길 기도하며. 김목사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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