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1일 목양칼럼입니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구속하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필요합니다. 자유는 기본권입니다. 그러나, 자유를 기본권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미 자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이 자유라는 말의 의미? 정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가치를 형성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자유란 구속과 억압을 받지 않을 권리일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서 자유는 경제적인 의미를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만들고 거래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자유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침해가 존재해서는 안되는 사회의 가치와 시스템의 기초가 되는 전제인 것이죠. 그러나, 개인의 자유는 무한정 아무런 경계가 없이 누릴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의 공익과 질서를 위해서 때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최소한의 자유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더 갖고 싶은 자유의 의지를 포기하고 제한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모두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역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제한이 없는 자유는 누군가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두 가지의 개념의 충돌은 개인이 홀로 살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함께 살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는 권리와 함께 내가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권리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이것은 좀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문화권과 사회에서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지 않을 것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자유는 우리가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면서 모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나의 제한이, 나의 내려놓음이 누구에게는 기회가 되고, 모두에게는 더 큰 자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누군가의 자유는 누군가 그 자유를 스스로 내려놓을 때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공동체의 실체를 경험하고, 세상이 주님의 손길을 만나는 그 자유는 누군가가 스스로 선택해서 거절한 자유가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 당신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시는 성령께서 자유로움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나의 자유가 아닌 공동체의 자유와 우리의 본성의 자유가 아닌 성령의 자유를 위해서 나를 절제하고 구별한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죠.
인권과 기본권으로서의 자유는 주어져야 하는 부분이지만, 이 스스로를 제한하는 자유는 훈련으로 되어집니다. 이 훈련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성숙이라고 합니다. 성숙은 나의 자유에서 우리의 자유를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유, 나의 가정의 자유를 넘어선, 교회 공동체의 자유, 이 세상의 자유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은 다시 나의 자유를 온전하게 하는 안전막이 되어줄 것입니다. 더 큰 자유를 위해서 나의 자유를 내려놓는 훈련과 성숙은 힘들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망설일 문제는 아닙니다. 심은대로 돌아오는 황금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비전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성숙으로, 주님의 나라가 자유롭게 임하는 그 현장을 만나는 다음공동체가 되길 축원합니다. 그 길을 함께 걷게 된 여러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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