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9일 목양칼럼입니다.
지성의 제자도가 필요한 때.
요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뜨겁습니다. 베스트셀러 목록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래의 우주정복, 과학의 발달, 인간 수명의 연장, 인간의 기술적인 진보로 인한 업적. 새로운 차원의 세상과 새로운 신인류의 등장에 대한 기대감 고취를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처럼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낙관주의와 성취주의로 채색되어 있는 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의 우월성과 네트워크, 최첨단 기술과 과학, 할 수 있다는 정신력까지 깍아지른 듯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앞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의 정당성을 이성적으로 설명해내기 위해서 과학계에서 설정한 개념중에 하나가 ‘지적설계’라는 개념이 있는데-즉, 누군가 절대적인 디자이너에 의해서 이 세상의 복잡하고 정교한 생태계와 우주, 각각의 생명체의 매커니즘과 시스템이 사전에 계획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에 대한 도전과 응전을 학문적인 차원에서 풀어내기 위해서 창조주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으로 사용했던 이 용어의 주체가 인간 스스로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Crispr라고 하는 유전자의 첨삭을 통한 인간창조의 기술입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장점도 있습니다. 유전적인 질병이나 선천적인 장애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건강한 DNA를 이식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논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기술의 백미로 꼽는 것은 내가 원하는 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외적인 모습에서부터 두뇌의 상태와 성격까지 어느 정도 맞춤식으로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에게 적용해보고 싶은 생각도 살짝 듭니다.ㅋㅋ 다리가 10센티미터쯤 더 길어질 수 있다면…^^; 그러나,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들이 과연 행복할까?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아기들이 그냥 평범하게 태어나는 아기들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어갈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자신들에게 발견되는 또 다른 연약함이나 인생의 굴곡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의 변화의 속도가 아찔아찔합니다. 우리가 살았던 역사속의 그 어떤 변화보다 큰 변화가 앞으로 10년간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클라우스 슈밥의 공언은 그냥 나온 것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가 그 일면을 날마다의 뉴스에서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성주의와 과학주의자들의 과신에 찬 찬가 속에서 역사는 거대한 퇴보의 회오리 속에 빠지곤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 사용하는 것은 필요하나 그것이 모든 것의 구세주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더 처참한 파괴와 인간성의 거절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이 시간들은 세상의 속도에 방향과 길을 잃고 헤매기에 딱! 좋은 때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들은 그렇기 때문에 더 강력한 복음의 필요와 하나님 앞에 우리의 능력과 지성, 인간성의 무기력함을 굴복케하여 주님의 다스림이 회복되어야 하는 때입니다. 시대를 분별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삶과 사회의 길을 찾는 지성의 제자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에 우리의 삶을 분명히 해야 할 때입니다. 골로새서의 고백처럼 모든 지혜와 지식의 충만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세상을 따라서 흘러가며 살지 않고, 주님의 흐름을 따라가며, 세상의 흐름에 믿음의 길을 내는 지혜로운 청지기로 우리를 부르신 삶의 살기 바랍니다.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함께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여러분, 한 주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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