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31목양칼럼입니다
Finding DAVID
요즘 사무엘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윗의 인생을 통해서 일해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 묵상을 통해서 바로 저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고, 가리고 싶지만, 그 모습이 바로 저의 안에 있는 다윗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죠! 저는 성경속의 다윗뿐 아니라, 제 안의 다윗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글을 쓰고 있는 날은 금요일 오후입니다.^^-에서 다윗이 보여주는 모습은 참새롭게 보입니다. 암몬과의 전쟁에 자신의 분신처럼 믿고 있는 요압을 내보내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밧세바를 바라보는 다윗의 모습, 그녀를 취하고,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아를 불러서 은혜를 베푸는 모습.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다윗의 마음과 다윗의 생각과 다윗의 마음이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그 다윗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다윗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다윗만큼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다윗만큼은 그 자리를 지켜주어서, 우리의 기대와 바램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존재로 기록되길 원하지만, 다윗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고, 흔들릴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나처럼 말이죠.ㅎㅎㅎ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죠!
오늘 본문은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사울의 통치로 인해서 무너진 국가의 영적인 기틀을 마련하고, 대외적으로 영토를 확장해가고 대내적으로 조직과 국가시스템을 정비하면서 안정의 기초를 마련하고, 잊혀질 수 있었던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여 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왕의 아들의 지위를 부여하는 은총을 베푸는 그의 인생의 절정의 한 가운데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반전이 더 극대화됩니다. 어떻게 이랬던 다윗이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다윗은 전혀 두 사람이지 않습니다. 그냥 한 사람일 뿐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기게 하실 때와 하나님이 아니라 그의 안에 일어난 정욕에 충실하게 반응할 때의 차이. 그 한 가지였습니다. 저에게 가장 섬짓했던 것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풀었던 그 기가막힌 헤세드(은총)가 우리아에게도 베풀어지는데, 전자는 목동의 시절부터 자신에게 주셨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가시는 하나님의 헤세드(은총)에 대한 반응이었는데,후자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한 반응으로 그 헤세드(은총)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이상화해서 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모든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그 안에 두 명의 다윗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구원자인 것처럼 떠들 필요도 없고-그런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약점과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비난할 이유도 없습니다-그 사람도 나와 같은 죄인의 한 사람이기에…-. 그래서, 오늘도 그분의 십자가 아래로 나아갑니다. 내 안에 있는 그 다윗을 모두 품어주신 사랑이 계시기에. 그 능력이 있기에. 오늘도 그분으로 살아갑니다. 오늘도 주님으로 살기를. 오늘도 그분의 성품에 잠기기를… 다윗을 사랑하신 주님으로 인해서 참 감사하는 오후입니다.^^

댓글